오랜만에 컴퓨터 정리를 하다가 세상 까칠하고 예민한 고양이 '고봉구'의 사진첩을 열었습니다.
봉구는 22년 여름에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 긴 고민끝에 그해 겨울에 데려온 아이입니다.
오랫동안 심한 구내염으로 많이 아팠고 2주간의 낯선 병원생활로 아주 예민하고 까칠한 고양이예요.
잘해줘도 트라우마는 남아있나봐요.
지난 사진들을 보니 거친 인생을 살아온 아이가 우리집을 적응하면서 태도가 바뀌고 나이가 드는 모습이 보이네요.
그녀의 before 와 after 를 이야기 해볼께요.

까칠냥~ 고봉구의 before & after

봉구가 저희 집에 오고나서 1년동안은
제가 활동하는 시간에는 자기 방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어요.
제가 자고 있을때 나와서 돌아다니고 저를 관찰하곤 했었습니다.
언제부터 와서 저러고 쳐다보고 있었던건지... 자다가 보니 너무 귀엽더라고요.
벌써 4년전 얼굴인데 ...어렸네요.
봉구야.. 너도 나이를 먹는구나.

"봉구 굳모닝~ "
아침 인사를 하니 못들은 척 고개를 돌리면서도 곁눈질로 집사를 관찰합니다.
째려보는거 아니라고요.

지금은 뭐... 밤새 우다다다다 집안을 뛰어 다니다가
철푸덕~ 누워서 집사를 쳐다봅니다.
이젠 뭐 가까이 다가와 관찰할 단계는 지났다는 거죠.
초롱초롱~ 관찰하는 예전이 눈빛이 아닙니다.
관심없는 눈빛.
오늘도 니가 글치~ 하는 눈빛
"아직도 쳐~자니?"
"밥 안줄꺼야?"
"화장실 안치우니?"

길바닥에서 박스만 써봤던 그녀라서
전기방석을 깔아줘도 제대로 쓸줄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따뜻하라고 깔아준 거니.. 어쨌거나 따뜻하다면 된거지 뭐... 이 촌뇬아~

이제는 뭐... 방석 깔아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거기 위에만 있고
다른데서 자다가고 난로 켜주는 시간에 맞춰 잠자리도 옮길 줄 아는 냥이가 되었습니다.
스트리트에서 리얼 사냥만 해왔던 그녀라서 아파트생활이 지루할 것같아 첫 장난감을 사줬습니다.
마구마구 나대는 나비를 어쩔줄 몰라합니다.
자기가 이빨이 없는 줄도 모르고 허우적대기고 하고요.
" 모야모야모야모야.. 집사~ 이런 것도 있니?"
지금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 야! 집따~ "
" 일어나야 하는 거니? 나 이거 누워서 잡아 "
" 가끔 눈감고도 잡는다"
" 다이소꺼 말고 좀 비싼것도 사줘봐 "

4년이면 냥이의 시간으로는 x7을 해야하니 28년이 지났건가요?
예전엔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청초한 자태
청순미가 좔좔좔 흐르던 girl냥이였는데

세월에 장사없다고 능글능글~노련미가 폴폴 풍깁니다.
심지어 소녀미는 사라지고 아재같기도~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오랜 길바닥에서 다져진 저렴한 입맛~
닭고기를 삶아줘도~ 비싼 츄르를 줘도 쳐다도 보지 않아요.
츄르 한봉지을 다 못먹는 싼마이 입맛입니다.

한결같이 좋아하는 것은 사료뿐~
그래도 발전한게 요즘은 비싼 사료만 골라서 먹을 줄 압니다.

장난감에도 그녀의 싼마이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핸드메이드~ 친환경~ 냥체무해~한 고급진거 사줘도 첫날 냄새만 맞고 쳐다도 안봅니다.

왠지 발암물질 나올것같은 천원짜리 다이소 장난감만 애정해요.
저 핑크 생쥐를 어찌나 물고 뜯고 맛보고 껴안고 던지고.. 하는지 벌써 4개째 사줬어요.

한결같은 그녀의 행동 중에 가장 킹 받는 건 ... 아우!!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까칠냥'이라는 것.
주인 잘 만나서 에어컨 팡팡 나오고 보일러 팍팍 돌려주는 집에서
쌀보다 비싼 사료 사주는데도 '애정표현'이라는 걸 안해줍니다.
눈키스 하나 해주는게 아주 큰 성은이예요.
참다 참다 못해 한번 찐~하게 안으면 삐져서 쇼파 밑에서 안나와요.
" 내가 몹쓸 집사구나 "

배에 어푸 어푸 배방구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칩니다.
그리고는 숨어 있어요.
얼굴만 안보이면 되나봐요.
자기는 완벽하게 숨은 거지.
"고봉구... 서운해"

봉구를 입양하고 처음 여행을 갔을때 참 미안하고 불안했는데...
이집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집사뿐였나봐요.
제가 없으면 팔다리 쭉~ 뻗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먹습니다.


추운 겨울 꽝꽝 얼은 물을 핥아먹던 그녀라서 그런지... 따뜻한 것을 좋아합니다.
뭐.. 모든 고양이가 뜨끈뜨끈을 좋아하겠지만
처음부터 유난히 극세사 이불을 좋아해요.
제가 4천원짜리 극세사 이불만큼도 안되는 존재인가봐요.
ㅋㅋㅋ 쓰고 보니 뒤끝있는 집사네요.

서운하지만 요즘같은 날이면 예전 봉구 생각이 많이 납니다.
눈밭을 힘겹게 걸아가는 봉구의 뒷모습
아픈 혀로 햝은 움푹 파인 얼음물그릇.
이 작고 소중한 아이가 저런 길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봉구랑 지지고 볶고 살았던 시간이 벌써 4년이 되었네요.
그냥 봉구는 노란 치즈냥이지... 싶었는데 예전 사진을 보니 바뀐 모습이 편해보여서 다행입니다.
까칠하지만 함께 사랑하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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